매일성경

20210111 - "권위 있는 말씀"(눅4:31~44)

예수님의 말씀에는 권위가 있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시니까 아주 당연한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말씀으로 꾸짖자 귀신들이 물러가고 각종 질병이 사라졌습니다. 가버나움에서는 이런 이적과 기사가 엄청나게 많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고향인 나사렛과 비교가 되는데, 그곳 사람들은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똑 같으신 예수님이신데 어떻게 그를 대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귀신들은 말 그대로 귀신 같이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알았습니다. 귀신들도 예수님을 믿고 떨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순종을 뒤따르지 않는 믿음은 진정한 믿음일 수 없습니다. 말씀 한 마디라도 삶에서 실천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귀신 들린 사람과 베드로의 장모가 고침을 받았다는 소식이 쫙 퍼지자 사람들이 몰려 왔습니다. 예수님께로 온 많은 사람들이 영적, 육적인 병을 치유 받았습니다. 그 바쁜 사역 중에서도 예수님은 "한적한 곳"을 일부러 찾으셨습니다. 쉼, 곧 안식의 시간을 갖기 위함이셨습니다. 육체적인 쉼도 필요하셨고, 성부 하나님과 기도로 교통하시면서 전인적 쉼의 시간을 갖으셨던 것입니다.

가버나움 사람들은 예수님이 자기들 동네에 더 머물러 주시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을 배척하고 죽이려고 했던 나사렛 사람들과 매우 대조되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환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곳에 안주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떠나 다른 동네들을 향하셨습니다.

권위 있는 예수님의 말씀이 내 곁에 있습니다. 옥토와 같은 마음으로 간절히 그 말씀을 사모하며 기다립니다. 또한 그 말씀을 내 입에도 주셨습니다. 믿음으로 말씀을 선포하면서 영육으로 뒤틀린 것들을 바로 잡아가야하겠습니다. 쉼의 시간을 적절히 가짐으로 내게 명하신 사역을 잘 감당하기를 원합니다.

 
작성자
이인호
작성일
2021-01-11 11:30
조회
2420
전체 1

  • 2021-01-11 12:41

    예수님은 무엇때문에, 이곳 저곳 다니시며,
    가르치시고, 고치시고, 선포 하셨을까요?
    하나님의 사랑을 발길이 닿으시는대로 베푸시며 다니신 것은 아닐까요?
    그러다 조금 쉬시며 삼위의 사랑의 관계 안에 사랑을 채우시고
    다시 사랑을 베풀기 위해 이곳 저곳 다니 신 것은 아닐지?

    우리에게 너희도 나 처럼 이렇게 사랑을 베풀고 다니라고 명하시는 것은 아닐지?
    주일 교회에서 또 QT와 개인 기도를 통해 성삼위와 교통하며
    충분히 사랑을 채우고, 다시 사랑하라고...

    예수님의 행적 자체가 사랑이라 생각하니,
    제가 오늘 하루를 또 어떻게 살아 내야 할지 목표가 정해지는 것 같습니다.

    // 성삼위 하나님의 관계 속에 들어가 사랑을 충분히 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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