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
고린도전서 14:1~19절 - 은사로 서로의 덕을 세우라.
고전14장은 방언과 예언의 문제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일반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공적 예배라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말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절,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기본적으로 방언도 예언도 신령한 은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러한 은사가 가진 대 전제가 있는데, 그것은 사랑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사도바울은 이러한 전제에서, 그리고 공적 예배라는 상황에서 방언보다 예언을 더 하려고 하라고 권면합니다
사도바울은 방언에 특성을 이렇게 말합니다.
2절, 방언은 사람에게 하지 않고 하나님께 영으로 비밀을 말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방언은 다른 사람은 알아듣지 못하고, 자기 덕을 세웁니다.
오늘 본문은 아니지만, 22,23절을 보면, 이러한 방언이 믿지 않는자들에게 표적이 되기는 하지만 공적 예배때 모두가 다 함께 공개적으로 사용
하면 믿지 않는 자들이 볼 때 시험에 든다고 말합니다.
예전에 교회에서 방언이 활발하게 역사할 때가 있었습니다.
문제는 교회에 처음 온 사람들이 그 현상을 이상하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이상한 집단으로 보는 대표적인 현상 중 하나가 방언이었습니다.
사도행전에서도 오순절 성령강림때도 그 현상을 보면서 술취했다고 말하기도 하지요.
이처럼 방언은 신령한 것이지만,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거부감이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따라서 이런 방언이 공적예배나 모임때 사용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주의를 필요로 한다는 말입니다.
반면, 예언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3절, 예언은 사람에게 말하면서, 다른 사람의 덕을 세우고, 권면하며 위로한다고 하고,
4절, 이렇게 해서 예언은 교회의 덕을 세운다고 말합니다.
22절, 25절을 보면, 이런 예언은 믿는 자들을 위한 것(22)으로 예언을 통해 책망받고 판단받아 마음에 숨은 일들이 드러나 하나님께 경배하며
인정(25)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사도바울의 기본적인 설명이지요.
방언과 예언에 대해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방언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나와 하나님과의 소통에 필요하고 예언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으로 그와 하나님의 관계가 회복되도록 권면한
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방언은 사적으로 행하고 공적 예배나 모임때는 예언하기를 힘쓰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19절도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19 그러나 교회에서 내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이것이 결코 방언을 폄훼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 모임이라는 상황에서 그렇다는 것이지요.
바울은 방언과 예언과 같은 신령한 은사에 대한 작은 결론은 무엇일까요?
내일 본문인데 26절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
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모든 은사는 서로의 덕을, 공동체의 덕을 세울 수 잇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덕을 세우기 의해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일까요?
무분별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차례에 따라해야 하고 더 나아가 통역이 되어서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함을 말합니다.
그리하여 결국 이 모든 것이 자기의 유익이 아니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사용되고, 더 나아가 하나님께 영광돌려야 한다는 것이지요.
비단 방언과 예언뿐 아니라 모든 은사가 그렇습니다.
나 좋자고, 나를 위해서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잘 사용되어야 하지요.
우리는 항상 양극단을 조심해야 합니다.
공동체를 위해 전혀 은사를 사용하지 않는 것도 문제이고,너무나 무분별하게 은사를 자랑하듯 사용하는것도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결국 은사가 생명을 회복시키고 공동체를 세우는 데 귀하게 사용되길 원합니다.
우리 길가에 교회가 은사가 풍성하길 바랍니다.
하지만 더 바라는 것은 그 은사가 적극적으로 섬김을 위해 사용되는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기꺼이 주된 은사로 서로를 기쁘게 섬길뿐 아니라 때때로 주된 은사는 아닐지라도 공동체와 연약한 성도들을 위해 기꺼이 섬길 줄 아는 그런
성숙한 교회와 신앙인들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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