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20210120 - "큰 자"(눅7:18~35)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한순간의 사고나 바이러스 감염으로 건강을 잃을 수 있습니다. 건강에 자신 있다고 말 못할 이유입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목숨까지 바치겠다던 베드로도, 바알 선지자 450명을 대항하여 제단에 하나님의 불이 임하게 했던 능력의 선지자 엘리야도 한순간에 흔들리고 무너진 경험이 있었습니다.

세례요한은 성령 충만한 주의 종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시려하자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에게 그렇게 할 수 있냐고 했으며, 하늘로부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의 기뻐하시는 자, 곧 메시아라는 음성을 들었던 자입니다. 그런데 그가 흔들렸습니다. 그는 자기 제자 둘을 보내 예수님이 참으로 메시아이신가를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 엘리야 그리고 세례요한 등 믿음의 사람들도 흔들렸다면 나야 어떠하겠습니까? 늘 겸비하여 주를 붙들지 않으면 넘어질 수밖에 없는 인생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돌아가자 예수님은 무리에게 요한을 칭찬했습니다. 그의 연약함을 이해하시고 아셨던 것이지요. 그리고 그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자기의 길을 예비하러 온 자이며, 세상에서 가장 큰 자라고 하셨습니다. 세례요한은 의심이 생길 때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고 질문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확신의 자리로 나아간 것이지요.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기 의로 가득 찬 자들이었습니다. 회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고, 세례요한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로 인정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교만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끝내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걷어 차버린 불쌍한 자들이었습니다. 진리에 대해 반응하기보다 비판을 일삼았습니다. 요한이 거의 먹지도 마시지도 않자 귀신이 들렸다 하고, 예수님이 먹고 마시자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자며 죄인의 친구라고 했습니다. 교만은 결국 그들을 파멸의 길로 안내했던 것입니다.

늘 마음을 비우고 주님 없이는 설 수도 없고 살 수도 없음을 고백하며 겸손히 주의 뒤를 좇아야하겠습니다. 늘 깨어 말씀과 기도로 겸손히 나아갈 때 비록 이 땅에서는 무명이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세례요한보다 큰 자라 일컬음을 받게 될 것입니다(28).
작성자
이인호
작성일
2021-01-20 09:03
조회
2539
전체 1

  • 2021-01-20 19:16

    공감대 형성
    정말 어렵고도, 어려운 일입니다.
    능력의 예수님이 오셨는데도,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는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공감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바리새인과 율법학자의 태도에 공감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사랑을 함께 가지고 있다면,
    함께 웃고, 함께 울 마음의 준비를 하며, 공감하고 표현하는 skill을
    연마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공감 기술이 너무 형편없어
    항상 아내에게 지적을 당하고 삽니다.

    어떻게 하면 공감하고 그것을 표현 해야 할지
    연구하고, 노력하면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공감 능력이 떨어져서 문제이긴 하지만
    공감 능력을 높이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영원히 풀지 못 할 숙제가 되고 말 것이니... 노력 해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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