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
사사기 21장 13~25절 - 가장 깊은 절망에서 다시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베냐민지파에 대한 징계를 행한 후에 이제는 이스라엘 가운데 한 지파가 사라질 것을 염려하지요.
어떻게 하면 다시 한 지파를 회복시킬 수 있을지를 논의하면서 이들을 위해 600명의 아내를 마련해주기로 합니다.
하지만 자기들은 이미 딸들을 베냐민 지파에게 주지 않기로 맹세했다고하면서 총회에 참석하지 않은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을 쳐서 그곳에서 처
녀 400명을 데려오기로합니다.
그들은 군사 12,000명을 보내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11 너희가 행할 일은 모든 남자 및 남자와 잔 여자를 진멸하여 바칠 것이니라 하였더라"
지금 이스라엘은 베냐민 한 지파를 살리기 위해 야베스 길르앗 지역의 동족을 사라지게 만들고 있는 것이지요.
아무튼 그곳에서 400명을 데려온 후 림몬바위에 있는 베냐민 자손에게 보내 평화를 선포하자 그들이 돌아오게 됩니다.
그들에게 여자들을 주었지요.
여성들의 의사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단지 한지파를 살리기 위한 도구로 사용될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데려온 여성이 400명이므로 여전히 200명이 부족했지요.
다시한번 아이디어를 내는데 해결책으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19~21절을 보니까 그냥 여성들을 납치하라는 것이지요.
이건 또 도대체 무엇입니까?
베냐민의 죄악에 분노하면서 심판했던 그들이이제 스스로 죄악을 용인하고 조장하고 있는 모습이지요.
율법은 사람을 납치한 자를 사형에 처하도록 규정합니다(출21장 16절)
하지만 11지파들은 지금 그들은 납치하도록 하고, 만일 가족이 항의하면 그 문제까지 해결해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18절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18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딸을 그들의 아내로 주지 못하리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맹세하여 이르기를 딸을 베냐민에게 아내로 주는 자는 저주
를 받으리라 하였음이로다 하니라
말씀드린대로 자기들은 이미 딸들을 베냐민에게 아내로 주지 않기로 한 그 맹세를 지키기 위해 율법을 어기고 죄를 범하게 되는 것이지요.
하나의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 다른 죄를 범하는 모습이지요.
과연 이 맹세를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셨을까요?
이것이 과연 율법을 지키는 것일까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걸까요?
실상은 자신들의 잘못을 스스로 책임지려기보다는 약한 사람들에게 떠넘기는 비겁함이지요.
결국 고통은 연약한 사람들의 몫으로 남습니다.
타인의 희생, 무엇보다 연약한 이들의 희생위에 세워지는 샬롬은 절대로 진실한 샬롬, 평화가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사사기는 마지막은 다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이것이 사사기의 전체의 모습이면서 사사기 전체에서 울리는 외침이지요
우리는 사사기를 살펴보면서 끊임없이 죄가 반복되는 모습을 보게 되지요.
마지막에라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나왔으면 좋았겠지만사사기는 끝까지 그렇지 못합니다.
오히려 더 죄가 심화되고 확장되어가지요.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의 절망적인 모습을 봐야 합니다.
우리 힘으로 이 죄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우리의 진짜 모습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의지할 수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왕이 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가요?
우리 삶에는 절망만이 남게 될까요? 더 이상 희망은 없는 걸까요?
아닙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렇게 절망적인 시대속에서도 다시 회복을 시작하십니다.
가장 연약한 자를 통해 새로운 구원의 역사를 시작합니다.
우리는 룻기를 통해 그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가장 암울한시대, 이제 남자들은 다 죽고, 연약한 여성들만 남은절망만 가득한 한 가정, 한 연약한 이방의 어린 소녀를 통해 하나님은 새로운 역
사를 시작하십니다.
바로 그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탄생시키시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시는 것이지요.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의 죄악가운데에서 특히 반복되는 죄 가운데에서 다시 예수그리스도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 스스로 재물이 되어, 우리 죄를 대시하여 십자가에 달리사 모든 죄의 권세를 멸하시고 우리를 자유케하신 영원한 사사, 영원한 제
사장, 영원한 왕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분을 의지하고 그분에게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우리가 여전히 죄가운데 머물고 있을 때, 여전히 우리 자신을 왕으로 삼고 있을 때, 주님은 우리 죄를 감당하시기 위
해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음을 잊지 마십시오.
그분을 우리의 삶의 주인으로 왕으로 섬겨야 합니다.
그분에게 함께 하며 순종하고, 따라갈 때 우리에게 소망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사기를 마무리하면서 예수님의 향하고, 의지하는 마음과 그분을 향한 사랑이 더욱 깊어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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