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서 | 이인호목사 칼럼

20070318 - "몸부림"(이인호목사칼럼)

청년시절 정말 유별난 몸부림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왜 내가 그랬는지 하지만 그 때에는 제 나름대로 진지했고 심각했습니다. 아니 그러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잦은 금식기도, 이른 아침과 밤의 신학교기도탑과 산에서의 기도, 금요철야 기도 등은 차라리 아우성이었습니다.

서울 동부이촌동에 있는 충신교회에 다녔는데, 금요철야집회, 부흥회, 주일저녁예배 시 찬양인도를 도맡아 했습니다. 그러니까 성도들 앞에서는 항상 웃는 모습, 승리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실상 저는 그때 처절한 싸움터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겠지요. 썩 건강하지 못한 몸에, 수련회에 따라온 학생, 세상에서 가장 멋진 동생, 절친한 친구, 환갑을 막 넘기신 아버지의 연쇄적인 죽음이 그 당시 저의 힘으로 짊어가기에는 너무 버거운 짐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긴다하면서도 왜 그렇게 자유하지 못했는지. 그 풍랑은 정신없이 저를 삼키려 했고 제가 흔들리는 것은 믿음이 약하다는 것을 의미했으므로 애써 그 “강한 믿음”을 증명해 보이려 했던 것이지요.

결혼해서도 이 풍랑은 좀처럼 잦아들 기미가 없었습니다. 매일 저녁마다 동네에 있는 산의 바위에 무릎 꿇고 앉아 밤이 깊도록 부르짖었습니다. 이제는 제 옆에 있는 사람에게까지 이 풍랑이 덮치게 된 것이지요. 제 기억으로는, 지금껏 아내에게 음식투정, 살림투정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오직 한 가지, 특별히 신혼시절, 아내에 대한 불만은 “왜 나와 같이 기도하지 않는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아내는 대학생 시절 자신이 속한 캠퍼스와 지구의 CCC(한국대학생선교회)에서 대표순장을 했을 정도로 하나님께 헌신되고 선교에 열정을 가진 이였습니다. 방언 등 성령의 은사를 경험하기도 하고 기도의 능력을 확신하는 이였습니다. 그러나 저의 양에 차지 않았습니다. 저의 눈에 비치는 아내는 ‘나태하고 자기중심적인 크리스천’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지요.

많은 부딪침과 깨달음 뒤에, 물론 지금 완벽하다는 말은 아니지만, 저는 이 영적 몸부림에서 상당한 자유를 얻고 있습니다. 청년시절 저의 몸부림을 마냥 폄훼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마냥 미화시킬 생각 또한 없습니다. 다만 신앙이란 것이 참 자유의 길로 연결되지 않으면 자신도 죽고 남도 죽이는 무기가 될 수 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만물이 기지개를 펴고 있네요. 완연한 봄빛입니다. 제법 나뭇가지에 푸른빛이 돌고 있습니다. 겨울 지친 몸부림이 봄날 생명의 자유로 이어지기를 소원해봅니다.
작성자
정동호
작성일
2007-03-18 11:26
조회
1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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