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서 | 이인호목사 칼럼

20090621 - "렉스 탈리오니스"

어느 날 저녁에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5~60대 남성의 목소리였습니다. 그는 대뜸 화를 내면서 길가에교회 관계자냐고 물었습니다. 그렇다고 하자 톤이 높아졌습니다. 허락도 없이 왜 남의 집에 전도지를 넣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죄송하다고 하면서 싫으시면 그냥 치워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분은 말을 멈칫거리면서 화를 더 냈습니다. 전도지를 치울 때 들어가는 노동력을 누가 보상해주느냐고 했습니다. 저는 최대한 공손하게 말하려고 노력하면서, 주소를 알려주시면 다음부터 그곳에 전도지를 넣지 않겠노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파트의 동과 호수를 알려주면서 당장 그 다음날까지 치우지 않으면 이후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참 고약한 사람도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 편으로는 참 흥미로운 사람이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전도지를, 신문에 삽입된 전단지나 문에 붙은 광고지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전도지에 이런 민감한 반응을 하는 것은 분명 기독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입니다. 교회나 크리스천에게 상처를 받았거나 실망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찾아가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하루 종일 지방에 다녀올 일이 있어 장로님 한 분이 찾아가셨습니다. 노크를 했는데 집에 아무도 없는지 그분을 만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장로님은 그 집 문 앞에 있는 전도지를 거둬가지고 돌아오셨습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렉스 탈리오니스(Lex Talionis)』는 말 그대로 복수하는 법입니다.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바빌론의 하무라비(Hammurabi)법전에도 나와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손해 입은 만큼 상대방에게 그대로 되돌려주는 앙갚음입니다. 물론 절제의 의미도 있습니다. 남이 한 대 때리면 한 대만 되돌려주겠습니까? 화가 치밀어 몇 대를 더 때려야 직성이 풀리게 되지요. 이 하나를 부러뜨리면 틀니를 하도록 만들어야 화가 누그러뜨려집니다. 아니 그것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죽이려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리 이 『렉스 탈리오니스』에 절제의 의미가 있다하더라도 복수하는 법이란 사실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크든 작든 복수는 꼭 앙금을 남깁니다. 그 앙금은 곰팡이처럼 부풀어 올라 결국 기회가 되면 터지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에 제가 전화하신 분의 말을 감정적으로 맞받아쳤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속이 후련할까요? 아닐 것입니다. 이내 후회하며 부끄러워질 것입니다. 자칫하면 전도의 문이 막힐 수도 있지 않을까요?
작성자
마중물
작성일
2009-06-21 11:27
조회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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