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서 | 이인호목사 칼럼

20090920 - "잊지 못할 맛"

미각에 뛰어나신 분들이 계십니다. 저는 그 맛이 그 맛 같은데, 이분들은 섬세한 맛의 차이를 잡아냅니다.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미각이 둔한 저도 잊지 못하는 맛이 있습니다. 그것은 15년 전 성지 순례할 때 시내산에 올랐는데 그곳 정상에서 먹은 컵라면 맛입니다. 평소 라면을 즐기지 않는데 그 때의 라면 맛은 달랐습니다. 이른 새벽 추운 정상의 날씨 탓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시내산에 오른 목적은 라면을 먹기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인 십계명을 받았다고 알려진 그곳에서 그의 영성을 조금이나마 경험해보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시내산”하면 그 라면국물 맛이 먼저 생각납니다. 모세는 라면 국물은커녕 40일 금식을 두 번이나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는데 기껏 컵라면 먹은 생각이 나니 이것, 문제가 있습니다.

금식기도원에서 기도하신 적이 있습니까? 그때 받은 영적경험보다 금식 기도 후에 먹은 쌀죽 맛이 더 생각나시지는 않는지요? 죽 맛이 생각나는 그 자체야 당연한 것이겠지요. 그러나 “그 기도원”하면 쌀죽부터 생각난다면 무언가 잘못되었습니다.

프랑스 TV프로그램 중 심리학자 미레이유 뒤마가 진행하는 토크쇼가 인기라고 합니다. 저명인사들을 초대하여 그들의 인생을 심리상담 형식으로 풀어간다는데, 그 프로그램을 즐기는 재불 작가가 한 청년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파리 근교의 대궐 같은 집에서 태어나 최고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증권가에서 잘 나가는 펀드매니저가 되었고, 배우 저리가라는 외모에 최고급 승용차와 밤마다 즐기는 파티가 그의 성공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돌연히 귀국하여 산 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마르세유이 달동네에서 흑인이주민들과 가난을 밥 먹으며 지내는 수도사가 된 것입니다. 화면에 비친 그의 평온한 얼굴에는 ‘저는 세상이 줄 수 없는 그 맛을 보며 살고 있습니다.’라고 쓰여 있는 듯 했답니다.

다시 시내산에 오른다 해도 모세가 경험한 깊은 영적체험의 신비스러운 맛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많은 순례자와 관광객들로 붐벼 조용히 묵상할 분위기도 안 될뿐더러, 최소한 몇 끼니는 금식하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집중해야 맛볼 수 있는 영적체험일 텐데 그런 분위기를 만들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컵라면 보기를 돌 같이 하고 영적체험의 맛을 간절히 사모하며 준비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가상하게 여기시고 그러한 환경 가운데서도 그 맛을 보게 하시지 않을까요?

 
작성자
마중물
작성일
2009-09-20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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