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서 | 이인호목사 칼럼

20091025 - "완전 연소"

어릴 적에 부엌에서 밥을 지으시는 어머니 곁에 앉아 있곤 했습니다. 아궁이에 마른 풀이나 나무를 태워 가마솥 밥을 하시는데 부엌에 연기가 자욱합니다. 눈이 매워 눈물이 쏟아집니다. 연기는 나무에 불을 지필 때 더 심합니다. 그 때에는 더 버티지 못하고 밖으로 달려 나오게 되지요. 어머니는 훅훅 입으로 바람을 불어 불을 살리십니다. 불이 활활 타게 되면 연기는 사라지게 됩니다. 그때에는 오히려 나무에 불타는 냄새가 고소하게 느껴집니다. 나무에 불이 어중간하게 붙으면 연기가 납니다. 그러나 불이 활활 타서 완전연소가 되면 매운 연기는 사라지고 힘과 에너지가 넘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어중간하게 타면 눈물 콧물 나는 인생이 됩니다.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일 그리고 사람에 대해 자신을 활활 태울 때 고소하고 향기로운 인생이 됩니다. 평생의 생명이 보장되어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못하는 게 우리의 슬픈 현실입니다. 생명보험에 드는 것도, 언제 우리의 생명이 끝날지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고 준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생의 남은 시간이 오늘 하루라고 한다면 당신은 어떤 태도로 임하시겠습니까?

1980년대 말 즈음만 해도 구소련에서는 크리스천들이 자유롭게 예배를 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곳을 방문한 어느 분이 비밀리 지하교회에서 예배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성도들은 찬송할 때도 울고, 성경을 읽을 때에도 웁니다. 찬양대조차 우느라 제대로 노랫말을 이어가지 못합니다. 설교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를 마친 후 그렇게 우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성도 중 한 분의 대답입니다.

“그것은 오늘 드리는 이 예배가 생의 마지막 예배가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 교회 성도들 중에는 소련비밀경찰(KGB)에 잡혀가 20년 혹은 30년 동안 소식이 끊긴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지금 이 시간이 생의 마지막 순간인 것처럼 열정적으로 살아야할 이유가 있습니다. 짧든 길든 활활 태운 향기로운 인생으로 남기 위함입니다. 완전연소로 하나님의 일과 이웃에게 힘이 된 인생으로 남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태우면 연료가 바닥날까봐 염려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잇대어 있는 인생의 연료는 한이 없습니다. 태우고 태워도 다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곧 무궁하신 공급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작성자
마중물
작성일
2009-10-25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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