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서 | 이인호목사 칼럼

20091018 - "물만 먹고 가지요"

첫째 누님 아니면 둘째 누님이 맞선을 볼 때입니다. 저희 집에 자장면과 탕수육이 배달되었습니다. 맞선 보신 남자분이 보내준 것입니다. 어릴 적에 중국요리는 아주 특별한 날이 아니면 맛보기 힘들었습니다. 식구가 많았기 때문에 실컷 먹지는 못했지만 국물까지 남김없이 말끔하게 치웠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작 저는 맞선을 본 누님이 첫째인지 둘째인지 잘 기억할 수 없습니다. 또한 그때 맞선본 분이 지금의 자형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인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당사자들이야 음식 앞에서 그 맛에 관심이 있었겠습니까? ‘이 사람이 나와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알아보기 위해 이것저것 질문도 하고 은근슬쩍 돌려서 묻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외모도 계산에 안 넣었다면 거짓말이 되겠지요. 신경이 온통 선을 보는 일에 있었기 때문에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였을 것입니다. 맞선의 목적은 만남입니다. 그 만남이 음식점에서 끝나지 않고 들길로, 강가로 이어진다면 그래서 해 지는 줄도 모를 정도가 된다면 서로가 하나로 맺어질 가능성이 커집니다. 아무리 훌륭한 음식점에서 최고의 요리를 먹는다 해도 서로의 진정한 만남이 없다면 전화번호조차 묻지 않고 일어서게 됩니다. “그 남자 어땠어?”하고 궁금해 하시는 어머니가 물었다 합시다. 이에 “탕수육 맛이 기가 막혔어요.”라고 대답한다면 누님은 맞선 보러간 목적을 잊어버린 것이 될 것입니다.

서울에서 목회하는 친구의 이야기입니다. 교회를 관리하시는 집사님이 계시는데 그에게 있어서 가장 힘든 일 중 하나가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새벽 3시 즈음에 기도하러오시는 한 할머니를 위해 교회의 문을 열어 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는 자신이 하루 중 제일 먼저 교회에 나와 기도하는 것에 자긍심을 갖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자기보다 먼저 교회에 나온 사람이 있다면 그 뒷날은 더 일찍이 나오십니다. 그래서 아예 아무도 그 영역을 넘보지 못할 새벽 3시 즈음이 된 것입니다. 이런 지극정성 안에서 하나님을 깊이 만나신다면 얼마나 귀한 일이겠습니까 마는, 염려컨대 하나님을 만남보다 ‘내가 교회에 제일 먼저 나간다.’라는 종교적 자기 의가 앞선다면 그 열성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만약에 그렇다면 할머니는 교회에 나가는 목적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럴 때 생각나는 동요입니다.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
작성자
마중물
작성일
2009-10-18 11:38
조회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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