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서 | 이인호목사 칼럼

20100418 - "황금산의 그들"

물기 촉촉한 눈이 하늘에서 쏟아졌던 며칠 후 교회 뒤 황금산에 올랐습니다.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던 중 곳곳에 나무가 부러져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두 소나무입니다. 수십 년의 풍상을 견디어온 제법 큰 나무들입니다.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찢겨진 것입니다. 그러나 소나무는 유난히 춥고 눈 많던 올 겨울에도 그 푸름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굵은 팔이 찢겨져 나가도 그 자태를 흩트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푸름이 그의 사명인 줄 알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숭고하기까지 합니다. 어린 소나무들이야 바람에 몸을 흔들어 쌓인 눈을 털어내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연륜을 더해갈수록 소나무는 가볍게 굴지 않습니다. 눈이 쌓여 짓눌러도, 아니 몸이 상하는 일이 있더라도 조금도 경박하게 처신하지 않습니다. 잎이 더 푸르고 촘촘히 박혀있을수록 소나무는 쌓인 눈에 더 취약합니다. 왜 그것을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태고 이래로 그 오랜 세월, 그 이유 때문에 소나무는 자신의 푸름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그 꿋꿋함은 애국가에서 읊은 그대로입니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에)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활엽수들은 무사했습니다. 겨울이 오기 전 푸름을 벗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죽은 듯이, 없는 듯이 폭설도 그들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했습니다. 옷을 다 벗어버리고 최대한 몸의 수분도 빼버렸습니다. 혹한에 얼어붙지 않게 하기 위한 지혜입니다. 비움으로 사는 법을 터득한 것이지요. 봄이 와 얼었던 기운이 물러갈 즈음 푸른 싹을 틔우며 계절의 변화를 제일 실감나게 만드는 것이 이들 활엽수들입니다.

소나무를 우직하다 못해 우둔하다고 말할 일이 아닙니다. 활엽수가 약삭빠르다 못해 경박하다고 말할 일도 아닙니다. 저마다의 길이 있고 저마다의 소리가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 비난하거나 얕잡아 보지 않습니다. 서로 어울려 겨울산도 이루고 여름산도 연출합니다. 다 침엽수이겠습니까? 다 활엽수이겠습니까?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귀하게 여길 줄 아는 마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자신에게 부여된 삶을 성실하게 영위하되 다른 사람의 귀함을 인정해 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바야흐로 완연한 봄입니다. 황금산은 곧 연두색으로 채색될 것입니다. 꽃향기로 가득한 그림이 될 것입니다. 어찌 그게 일부 특정한 나무들만의 작품이겠습니까?
작성자
마중물
작성일
2010-04-18 09:40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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