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서 | 이인호목사 칼럼

20100307 - "목적 있는 불편함"

오래 전의 일입니다만, 언젠가 휴일에 하루 종일 TV 앞에 뒹군 적이 있습니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육체가 원하는 대로 실컷 늘어져보았습니다. 휴식은커녕 머리가 무겁고 몸은 파김치처럼 더 쳐졌습니다. 사람은 편안하기를 좋아합니다. 편안은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오히려 탈을 일으킵니다. 그러면 적당한 선까지 편안하면 되지 않을까하지만 그 선을 지키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편안해지려 하면 하염없이 좀 더 편안해지고 싶기 때문입니다. 너무 편해서 약해지고 병이 생기는 경우도 많지 않습니까?

지혜로운 사람은 일부러라도 불편을 취합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앞을 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당장은 불편해도 그것이 가져다줄 열매와 기쁨을 기대하며 늘어지고 싶은 유혹을 뿌리칩니다. 그리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섭니다. 이내 그에 마음에는 소망으로 인한 평안이 가득 차오릅니다. 잠시 편안을 포기하니 평안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 평안은 참 편안이 됨을 경험합니다.

일부러 불편을 택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변화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무조건 변화를 시도한다고 되는 게 아니겠지요? 변화의 방향이 중요합니다. 올바른 방향은 변화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합니다. 가야할 곳이 옳은 방향이라고 확신할 때 힘이 생깁니다. 그런 확신이 없으면 멈칫거리게 되는 것이지요. 얼마 전 어느 고등학교 신입생을 위한 특강을 하러가는데 수련회장소 앞까지 가서 헤맸습니다. 운전하시는 선생님께서 가는 길을 미리 알아오셨지만 정확한 위치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았더니 목표지점 20여m를 남겨두고 왔다 갔다 했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생물학자이며 교육가인 데이비드 조단(David S. Jordan)의 말은 새겨볼만 합니다.

“세상은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는 자에게 길을 열어준다.”

편안을 터부시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문제는 편안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사용에 있기 때문입니다. 불편을 택하는 것에도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목적이 없는 불편은 불평의 가스로 가득 차게 됩니다. 조그마한 충격의 불꽃에도 금방 폭발하고 말지요. 당신이 취한 불편이 분명한 목적이 있는지 분별할 줄 아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목적이 있는 불편은 삶을 활력 있게 하고 새로운 소망과 앞날에 대한 벅찬 기대감 속에 참 평안을 경험하게 할 것입니다.
작성자
마중물
작성일
2010-03-07 09:29
조회
1337
전체 0

온라인 헌금 계좌 안내
농협 100054-55-001851
(예금주 길가에교회)

*계좌이체시 헌금을 구분해주시고 주민번호 뒷자리를 써 주세요.

(예: 십일조헌금: 십+
     주민번호 뒷자리
     주일헌금: 주+
     주민번호 뒷자리
     감사헌금: 감+
     주민번호 뒷자리
     선교헌금: 선+
     주민번호 뒷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