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서 | 이인호목사 칼럼

20100516 - "친구를 기리며"

신도수/ 비상한 친구였다/ 쇼펜하우어, 사르트르를 탐독했으며 보들레르의 <악의 꽃>을 애송했다/ 염세적 색채가 강했으나 늘 그런 건만은 아니다/ 잘 치지도 못하는 기타를 들고 산언덕에 함께 오르곤 했다/ 한 번은 수업 시간에 안 보여 어디 갔다 왔냐고 물었더니 비봉산에서 시를 썼다나//

언제 공부하는지 전교 일등은 맡아놓았다/ 황토 위 두 학급의 “엎어놓은 성냥갑” 같은 학교/ 우리는 그곳에서 만났다/ 이태가 지나도 별로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 예수는 좋아하지만 교회는 싫어한다는 말 때문이었을까/ 그가 먼저 내게 다가왔다/ 그의 자취방에서 달랑 맹물에 된장 푼 국 하난데 꿀맛 같은 밥맛은 지금도 못 잊는다/ 기다렸던 것일까/ 자기 돈 주고 성경책을 사 달란다//

우린 서울에서 재수를 했다/ S대 떨어지고 그는 SS대 인문대학 수석으로 들어갔다/ 자기는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김현승시인이 있는 학교에 가고 싶어서였다나/ 같은 학교에 가자고 잡아당기는 것을 못들은 체하고 난 신학대학교로 갔다/ 일 학년 어느 날 기숙사로 찾아온 그는 내가 다니는 교회에 함께 가겠노라고 선뜻 말을 꺼냈다/ 함께 교회청년부에서 회원으로, 청소년부에서 교사로 섬겼다/ 학부 중간에 군 입대 하려는 나를 한사코 말렸다/ 이제 막 신앙에 입문했는데 졸업하고 가면 어떠냐는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내 갈 길을 갔는데도/ 그의 신앙은 아름답게 성숙해갔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곧 바로 분당에 있는 K예고 영어교사로 발령받았다/ 직접 기독동아리를 만들어 지도하기도 했다//

그런데/ 고삼 담임을 맡아 입시철 상담하랴 원서를 쓰랴 하다가 과로로 쓰러졌다/ 워낙 몸이 약한데다 급성 백혈병이었다/ S대 병원 입원실에 누워있는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들를 때마다 시편을 읽어주며 기도했다/ 하루는 내 손을 힘없이 잡은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인호야 살고 싶다”//

“인호야 살고 싶다”/ 비굴한 구걸이 아니었다/ 생의 경외감, 그것이었다/ 이십대의 꽃다운 청년/ N고의 명물/ 아니 살아있었다면 한국 문학과 정신사에 큰 획을 그었을 신도수/ 그는 그렇게 갔다//
“인호야 살고 싶다”/ 아직도 귓전을 울리는 그의 음성에 조용히 읊조리며 대답해본다//
“그래, 도수야 잘 살께”

 
작성자
마중물
작성일
2010-05-16 09:44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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