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서 | 이인호목사 칼럼

20110327 - "시커먼 밥상"(이인호목사칼럼)

초등학교 1학년 때까지 저는 섬에서 살았습니다. 마을 대부분의 집들과 마찬가지로 저희 집도 김 양식을 했습니다. 부모님은 새벽 일찍이 일어나셔서 전날 바다에서 뜯어와 우물물에 씻어놓은 김을 기계로 잘게 부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물에 풀고 틀에 맞춰 발장에 뜨셨습니다. 그 다음 그것을 지게나 리어카에 싣고 바닷가와 논밭에 세워 놓은 건장으로 가서 너셨습니다. 너는 일에는 누나들도 동원되었습니다. 저는 어렸기 때문에 그 일에서 제외되었습니다. 대나무꼬챙이를 이용해 발장을 너는데, 비스듬히 꽂아 팽팽하게 다른 것과 잘 연결하여 너는 것이 기술입니다. 모든 것이 아침식사 전까지 이뤄졌습니다. 그래야 급히 밥을 챙겨먹고 학교에 갈 수 있었습니다. 해 질 무렵 발장을 걷는 일에는 저도 일손을 거들어야 했습니다. 저녁을 먹은 후 온 식구가 하는 일은 하루 종일 햇볕에 말린 김을 발장에서 떼어 상품이 되도록 백장씩 묶는 것이었습니다. 발장과 김을 분리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자칫하다가는 김이 찢어지기 때문입니다. 식구 많은 저희 집은 분업이 착착 이뤄졌습니다. 누나들은 발장에서 김을 분리하고 아버지는 못으로 송송 구멍 낸 양철 판으로 김 가장자리를 깔끔하게 다듬으시고 어머니는 열장씩 들쭉날쭉 십층을 쌓아 한 톳을 만드셨습니다. 저는 그저 찢어진 김을 야금야금 집어먹거나, 석유등 밑에서 벌어지는 가내공업을 졸린 눈으로 구경하는 것이었지요. 그 시간 화롯불에는 영락없이 고구마가 구워지고, 속살 뜨거운 그것과 함께 얼음이 설겅설겅 씹히는 동치미의 맛은 일품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침저녁 할 것 없이 식단은 대동소이했습니다. 검은색 옻칠한 상에 온통 검은 색 반찬입니다. 상품 가치가 없어 아예 가공에서 제외되는 김도 버리는 법이 없습니다. 햇볕에 바짝 말린 그것에 간장, 다진 마늘, 잘게 썬 파, 그리고 참기름 몇 방울을 떨어뜨려 버무리면 김자반이 됩니다. 양철 판으로 가장자리를 다듬을 때 생긴 김 가루도 훌륭한 반찬이 됩니다. 냄비에 살짝 기름을 두른 후 김 가루에 소금을 넣고 볶으면 바삭바삭하고 고소한 김 볶음이 됩니다. 김 가루를 물에 풀고 굴을 넣어 끓이면 잘 씹지 않아도 술술 넘어가는 김국이 됩니다. 매생이가 김 가루를 대신하기도 하지요. 그리고 찢어진 김은 화롯불에 살짝 구워 참기름 몇 방울 떨어뜨린 조선간장과 곁들어 먹습니다. 밥도 시커멓습니다. 쌀보다 보리가 더 많았기 때문이지요.

시커먼 밥상. 지금 보니까 건강 식단 중에 최고네요. 게다가 거기엔 꿈이 있었고 감사와 기쁨이 있었습니다.
작성자
정동호
작성일
2011-03-27 09:51
조회
1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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