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서 | 이인호목사 칼럼

20230903 - "쏜살 같은 인생"

관공서에 일을 보러 갔습니다. 차례가 되어 창구로 갔더니 직원이 내게 “아버님, 뭘 도와 드릴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아들만 둘이고 그렇게 나이든 딸을 둔 적도 없는데, 저를 그리 부르니 매우 생소하게 느껴졌습니다. 직원은 친근감을 표현한 것이었을 텐데, 이제 난도 그런 호칭에 익숙해져가야 할 나이가 되었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전에 동기모임이 있었습니다. 관광하는 곳에 입장료를 내는데 경로우대 표가 있었습니다. 65세 이상이면 입장료를 조금 덜 받는다는 것입니다. 몇 개월이 모자라 저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았지만, 경로라는 말이 이제 곧 나를 대상으로 쓰이게 된다는 사실이 선뜻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참으로 빠르게 지나갑니다. 젊었을 때는 한 오백년 살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중년 여성으로부터 “아버님”이란 호칭을 듣는 나이가 되니 지난 세월이 하룻밤과 같이 느껴집니다. 이 땅에서의 남은 세월은 더 빨리 지나가겠지요.

퇴임을 앞두고 목양실에 있는 책을 정리하는 것이 큰 숙제였습니다. 집에 갖다 놓을 공간도 없어서 과감히 처분해야 하겠다는 생각만 해오다가 마침 이번 화장실 공사로 잠시 목양실을 다른 공간으로 옮겨야 해서 이 기회에 많은 책들과 자료들을 버렸습니다. 신학생 시절 밥값과 용돈을 아껴가며 월부로 산 전집들과 그동안 모아둔 책들은 마치 나의 분신과 같은 생각이 들어 하나라도 버리기 아까웠는데, 눈 딱 감고 처분을 했습니다. 40여 년 동안 모아둔 묵상노트는 나의 영적 일기와 같은데 그것도 나중에 누군가에게 짐이 될 것 같아 버렸습니다. 그래도 고등학생과 대학생 때 쓴 일기장들은 남겨 두었는데 그것도 버려야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 정리가 안 된 책과 자료는 임시 공간으로 옮긴 뒤에 천천히 처분하면 될 것 같습니다. 영어로 된 책은 인도네시아 스리위자야 신학교에서 필요하다하여 박스에 따로 담아두었습니다. 곧 우편으로 보내려고 합니다.

책과 자료를 정리하고 나니 홀가분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뒤엣것은 잊어버리고 푯대를 향하여 앞을 바라보고 가야겠다는 각오도 하게 됩니다.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가 될지는 모르지만, 주어진 시간을 허송하지 않고 더욱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로 채워야하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세월을 아끼고 계획을 세울 때, 과연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인지를 반드시 하나님께 물어야 하겠습니다. 내 욕심을 위한 것이라면 그 계획이 아무리 진전되어 있더라고 과감하게 버려야 하겠습니다. 모든 계획과 그 실행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매 순간마다 살펴야 하겠지요. 모든 것이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면 그것은 모두 옳을 것입니다.
작성자
이인호
작성일
2023-08-31 11:55
조회
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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