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서 | 이인호목사 칼럼

20211114 - "약함의 역설"

얼마 전 주일2부 예배를 마치고 나올 때 아빠랑 함께 현관에 서있는 한 유치부 아이를 만났습니다. 코로나19로 오랫동안 보지 못하다가 모처럼 교회에 나온 반가운 얼굴이었습니다. 못 본 사이에 훌쩍 컸습니다. 아이는 제게 인사를 하고 작은 가방을 열더니 사탕 하나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그것을 저에게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요. 사탕 그 자체로는 대단할 것도 놀랄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탕은 아이의 마음이었습니다. 큰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며칠 뒤에 그 사탕을 까서 먹으면서 또 한 번 그 마음이 느껴져 얼굴에 미소가 저절로 번졌습니다.

눈에 보이기에는 연약하고 작은 아이입니다. 아이가 제게 건넨 사탕 하나는 보잘 것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아이의 마음에는 다른 사람을 생각해주고 기쁨을 주는 강력한 힘이 있었습니다. 그 작은 사탕에는 그 어떤 것보다 더 달콤하고 축복이 넘치는 위로의 힘이 있었습니다.

성경 마태복음1장에 실린 예수님의 족보를 보면, 여성이 다섯 명이 나옵니다. 그들은 육신의 혈통적으로 예수님의 조상들입니다. 그런데 하나 같이 그들은 대단하다거나 힘깨나 쓰는 가문 출신들이 아닙니다. 다말은 창녀처럼 행동했고, 라합은 기생이었으며, 룻은 이스라엘이 경멸했던 모압 여인이었고, 밧세바는 간통한 여인이었으며, 마리아는 처녀로서 아이를 가진 자였습니다. 물론 마리아는 성령으로 아이를 잉태하였지만 당시 세상의 눈으로 보면 돌에 맞아 죽어야했던 죄인이었습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숨기거나 그럴 듯이 포장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들의 약하고 추한 모습 자체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약함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릴 때 그것은 새롭게 변화되고 그들을 통해 만왕의 왕, 온 세상의 구주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약함의 역설입니다. 물론 약함 자체가 강함은 아닙니다. 약한 것은 약한 것이고 강한 것은 강한 것입니다. 그런데 약함이 어떻게 강함이 됩니까? 그것은 자기의 약함을 아는 자가 강하고 능력이 크신 하나님을 겸손히 신뢰할 수 있고 그를 참으로 의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없이는 약할 때 강함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약할 때 강하다는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 전제될 때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며 진정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놀라우심을 경험하려면, 우리를 스스로 약함에 내주어야만 합니다. 그제야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능력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주 안에서 우리의 약함은 곧 강함입니다.
작성자
이인호
작성일
2021-11-12 13:43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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