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20231115 - "비판보다 공감을"(욥11:1~20)

하나님 앞에 자기의 솔직한 마음을 토로하는 욥의  긴 기도를 들은 나아마 사람 소발은 "말이 많은 사람"은 의롭지 못하다고 단정했습니다. 기도 중에 여과 없이 많은 말을 욥이 쏟아 놓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몸부림 치며 기도하는 친구를 위하여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해주지는 못할 망정 옆에서 친구의 기도를 듣고 있다가 그 내용과 태도가 자기 생각의 틀과 다르다 하여 날카로운 비판의 칼을 들이대야 하겠습니까?

소발은 하나님의 오묘하심과 전능하심을 인간이 다 헤아릴 수 없고, 하늘보다 높으시고 지하 세계보다 깊으시며 땅보다 길고 바다보다 넓으신 하나님을 말하면서 "허망한 사람"의 악한 일을 다 아시고 심판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전에 욥이 잘 살고 잘 나갔을 때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죄도 하나님께서 다 보셨고 이제 그것에 대해 하나님께서 징계하신다는 말이었습니다. 맞는 말 같이 보이나 틀린 주장이었습니다. 광대하신 하나님을 말하면서 다른 두 친구들처럼 소발은 편협한 인과율의 틀로 욥을 정죄했던 것입니다.

욥이 죄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회개하면 환난을 벗어나게 될 것이며 생명의 날이 대낮보다 밝고 어둠은 아침으로 변하며 희망이 있으므로 안전하고 평안히 쉬게 될 거라고 소발은 역설했습니다. 그러나 "악한 자들"은 회개하지 않고 그들의 희망은 숨을 거두는 것이라고 하면서, 고통 속에서 차라리 죽음을 달라고 기도하는 욥을 "악한 자"로 규정했습니다. 소발 앞에서 욥은 "말이 많은 자", "허망한 자", "악한 자"였습니다.

사람과 사안의 한쪽 면만 바라보고 속단하면 안됩니다. 한 사람의 말만 듣고 사람과 사안을 평가해도 안됩니다. 부분적인 진리는 왜곡될 수 있고 거짓이 될 확률이 큽니다. 소발의 말은 따로 떼어 놓고 보면 맞는 듯하나 그 역시 지식의 적용에 실패하고 있었습니다. 죽음 같은 고통 속에 있는 욥에게 필요했던 것은 "지혜"의 가르침이 아니라 공감이었습니다. 친구의 기도를 엿듣고 그것의 내용을 비판하기보다 함께 손을 붙잡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 옳습니다.
작성자
이인호
작성일
2023-11-15 08:00
조회
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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