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20230331 - "고독한 길에서"(마26:1~16)

무대 위에서 연극배우들은 고독을 느낀다고 합니다. 관객들과 동료 배우들 중 그 누구도 자기 대신 그 배역을 연기해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맡은 역할은 자기 홀로 고스란히 감당해야 합니다. 연극배우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는 그 어떤 사람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자기에게 부여된 길이 있습니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이 대신 자기의 인생을 살아 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고독은 필연적인지도 모릅니다. 미국의 사회학자 리스먼은 이를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역설로 묘사한 바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고독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향하셨습니다. 위로는 커녕, 그 고독을 가중시키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예수님을 어떻게든 죽이려고 모여서 흉계를 꾸몄습니다. 3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제자 가룟 유다는 대제사장들에게서 은 삼십을 받고 스승을 넘겨 주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아직도 로마의 압제에서 자기 백성을 해방시킬 메시야로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렇게 많이 천국복음을 전하시고 종말 설교(마24~25장)를 하셨는데도 그들의 눈과 마음은 이 땅에 머물러 예수님과 공감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예수님의 고독을 달래며 위로가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향유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여인이었습니다. 3백 데나리온은 족히 되는 그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을 도울 수 있었을 텐데, 그것을 허비했다고 제자들은 분개하였습니다. 1데나리온은 당시 일용직 근로자의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그것을 지금 우리 돈 10만원으로 본다면, 3백 데나리온은 3천만원으로 꽤 큰 돈입니다. 우리도 그 현장에 있었다면 제자들과 같이 반응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을 꾸짖고 여인을 칭찬하셨습니다. 자기도 잘 몰랐지만 여인의 행위는 며칠 후에 일어날 예수님의 장례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향한 순수한 사랑의 마음에 성령께서 역사하신 것이지요.

우리 교회는 특별한 절기 외에 주일마다 꽃꽂이 장식을 하지 않습니다. 너무 지나친 것도 문제이지만, 소박하나 정성이 깃든 교회 장식은 결코 허비가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은 경제성에 기반을 두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향한 순수한 사랑에 따라야 합니다.

저마다 자기에게 태인 십자가를 홀로 져야 합니다. 남편이, 아내가, 부모가, 자식들이, 다른 교우가 대신 져 줄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기대했다가는 실망과 상처가 커져 갈 것입니다. 고독하지만 자기의 길은 자기가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고독의 길에서 서로에게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따스한 말 한 마디, 따스한 손길로 서로를 향해 다가갈 때 그 고독의 길은 한층 더 감당할 만하게 될 것입니다. 고독한 삶에 그 누군가가 우리의 위로로 다가왔으면 합니다. 동시에 우리가 그 누군가의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어느 것보다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어떤 사람도 대신할 수 없는 고독의 짐을 우리 예수님만이 온전히 져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주와 함께 가는 길엔 더 이상 고독은 없습니다.

 

"고독한 길에서"(마26:1~16)

작성자
이인호
작성일
2023-03-31 08:58
조회
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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