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20220126(수) - "생수의 강" (요:7:37-52)

유대인들은 초막절에 실로암에서 물을 길어 성전 제단 서편에 붓는 의식을 거행합니다. 이는 광야에서 샘물이 솟아났듯이 성전에서 샘이 철철 흘러나와 한 해 농사를 위한 넉넉한 물이 공급되길 기원하는 ‘물의 의식’을 이어간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초막절 마지막 날에 생수의 공급을 약속하시며 풍성한 삶으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배푸신 은혜의 초청에 어떻게 응답할지를 살펴보고 저희들의 삶의 자리로 이어지는 영적 교훈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시간적 배경이 명절 끝으로 바뀌었습니다. 명절 마지막 날에 예수가 일어서서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다음과 같이 선포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37-38).

마치 사람들에게 폭탄이 던져지듯, 예수의 이 외침은 일반인뿐 아니라 종교지도자들까지 예수에 대한 견해 차이로 서로 논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의 반응을 살펴보기 전에 예수님 선포의 의미와 중요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배경이 되는 초막절과 물과의 관련성이 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을 떠나 영적으로 갈한 인생에게 생명수가 되십니다. 홍수에 생수 없듯이 세상에는 생수가 없습니다. 광야같은 세상에서 오직 예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를 구하는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공개적 선포로 사람들이 술렁였고, 두 부류로 갈렸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모세가 말한 ‘그 선지자’로 인정한 사람들입니다(40절).

이들은 며칠 전 예수의 가르침과 그전에 했던 여러 기적을 통해 그에게 마음을 연 사람들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지금 예수님의 선포를 듣고 ‘참으로’라는 표현으로 예수님의 메시아됨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부류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기적을 부인하진 않았지만, 그를 메시아로 인정하기에는 걸리는 점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출신이란 점이다. 미가 5:2에 의하면 다윗의 씨로 올 메시아는 베들레헴 출신이어야 하는데 예수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만일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출생했지만 나사렛에서 살게 된 경위를 설명하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들의 논쟁은 결말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에게 부정적인 부류들 중 어떤 이들은 며칠 전처럼(30절) 예수님을 잡아 산헤드린 공의회에 넘기려는 사람까지 있었지만 실행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은 예루살렘 유대인들뿐 아니라, 명절을 위해 예루살렘에 온 사람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뜨거운 논쟁점이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종교지도자들 사이의 반응이 소개됩니다. 며칠 전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를 잡으라고 성전 수비대를 보냈는데, 빈손으로 돌아온 장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아마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그에게 호의적인 많은 사람들 때문에 명령을 수행하지 못한 듯합니다. 곧이어 그들의 대화가 진행됩니다. 종교지도자들이 왜 빈손으로 왔느냐고 책망하자, 성전 수비대는 예수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다고 변명합니다. 그러자 종교지도자들이 ‘너희도 예수에게 미혹되었느냐’라고 비방합니다. 또한‘설마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예수를 믿는 자가 있는 것은 아니지?’라고 말하고, 예수를 믿는 율법을 모르는 자들은 저주 받은 자라고 비방합니다. 그러자 1년 반 전에 예수님을 만났던 니고데모가 대화에 참여하게 됩니다.

종교지도자인 바리새인들이 율법에 비추어 예수에게 호의적인 사람들을 저주하자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한 말과 그가 행한 행동을 제대로 파악하여 그것이 율법에 비추어 얼마나 정당한지를 평가하기 전에 섣불리 저주를 선언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고 이의를 제기합니다. 그는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며, 이는 예수님과 예수님에게 호의적인 사람들을 보호하려는 그의 의도를 드러냅니다. 그는 밤에 예수를 찾아와 영생의 길을 묻던 자였는데, 이제 점점 빛으로 나아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생수의 근원으로 참되게 믿는 자가 성령의 은혜를 경험합니다. 어중간한 믿음이나 편견과 아집에 사로잡힌 태도로는 은혜에 참여할 수는 없습니다. 믿는다면서 갈증에 허덕이지는 않는지 돌아보고, 터진 웅덩이를 기웃거리지 않는지 돌아보며, 생수의 근원되시는 예수님께 온전히 나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생수의 강" (요:7:37-52)

작성자
나창석
작성일
2022-01-26 14:48
조회
1580
전체 1

  • 2022-01-26 17:27

    제가 기득권인데
    갑자기 어디서 서른 살 먹은 젊은 애가 나타나서
    제가 쌓아 놓았던 전통, 금기를 무너뜨리고, 대중의 인기를 누린다면
    저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제가 바리새인과 대제사장들에게 손가락 질 할 수 없는 이유가
    저도 그들과 같은 판단을 했을 거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으며 때때로
    저를 예수님, 니고데모의 Role로 착각하며 ,
    바리새인과 대제사장을 정죄 할 때가 있습니다.

    제 안을 들여다보면 예수님의 빛 앞에 어둠이 될 수 밖에 없는
    죄인 임을 금방 알 수 있는데... 착각을 합니다.

    이런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은혜로 불쌍히 여겨 주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바리새인과 대제사장의 눈에서 니고데모의 눈으로 볼 수 있는 힘을
    허락해 달라고 주님께 요청 할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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