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20220416 - "알곡 크리스천"(요19:31~42)

"유다"라는 이름의 뜻은 "찬양"입니다. 스승 예수님을 흉악한 자들에게 팔아넘긴 가룟 유다는 그 이름값을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그리스천, 곧 그리스도인입니다. 수리아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제자들이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어졌습니다. "그리스도에게 미친 자", "예수쟁이" 정도의 늬앙스로 보면 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렇게 불리어질 때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러워했고 영광으로 알았습니다.

유대지도자인 대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종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이름값을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심문하며 십자가에 못 박는 과정을 보면 불의와 불법과 폭력을 서슴지 않고 행했습니다. 안식일에 십자가에 시신을 걸어두는 것은 그들이 속한 땅을 더럽히는 것이라 하여 빌라도에게 죄수들의 다리를 꺾어 그 시신을 치우라고 종용했습니다. 죄수는 발에 힘을 주어 횡경막을 위로 올려 간신히 숨을 쉬게 되는데 다리를 꺾으면 더이상 힘을 쓰지 못해 금방 질식사하게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정작 양심과 온 땅을 더럽힌 자들은 십자가에 달린 죄수들이라기보다 살기가 가득하고 위선적인 대제사장들이었습니다.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을 본 자들이 있었습니다. 제자 요한과 갈릴리에서 온 여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기절했다가 다시 깨어났다는 소위 가사설과 육은 죄로 오염되어있으니 거룩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영으로만 오셨다는 가현설은 다 이단의 사상입니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자 참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허다한 목격자들이 증언하고 있는 바입니다. 크리스천은 예수님을 만난 증인입니다. 그 경험을 간증하며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예수님을 증언해야하겠습니다.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는 산헤드린, 곧 공의회의 의원들이었습니다. 그들 역시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랐던 자들이었습니다. 주위의 눈이 두려워서 잘 드러내지 않다가 예수님이 가시는 마지막 길에 함께 하겠다는 용기를 내었습니다. 무덤을 내놓으며 장례식을 정성껏 치렀습니다. 이 일로 공의회에서 제명을 당할 수 있고 유대 사회에서 출교를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 감추지 않고 자신이 예수님의 사람임을 진정성 있게 고백했던 것입니다. 알곡 크리스천이 된 것이지요.

2여 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19는 마치 태풍과 같습니다. 평상시에는 잘 모릅니다. 폭풍우가 지나가봐야 제 자리에 버티고 있는 나무와 뿌리 채 뽑혀 넘어진 나무가 갈립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님 곁에 신앙의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자리를 지키는 알곡 크리스천이 되었으면 합니다. 나의 말과 삶을 통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우리 주님이 증거되어 크리스천이라는 나의 이름이 자랑스러워졌으면 합니다.

 

"알곡 크리스천"(요19:31~42)

작성자
이인호
작성일
2022-04-16 08:31
조회
1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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