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20210128 -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눅9:28~36)

오늘 본문은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로 시작됩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수난 예고이고, ‘팔 일쯤 되어’는 예수님은 수난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지만 제자들에게는 잊어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십니다. 마태복음 17장 1절에는 높은산에 올라가셨다고 기록합니다.

지난 주일 청소년부 설교에서 학생들에게 만약 아브라함처럼 멀리서부터 짐을 지고 산에 올라갔는데, 그 자리가 예배의 자리였다고 한다면 어떠했을 것 같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기분이 좋다, 은혜다 라고 한 학생이 있었을까요?

기도하시러 높은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이렇게 해도 불평이 없이 따를만한 사람... 수제자 베드로, 예수님이 가장 사랑하는 제자라는 정체성을 가진 요한과 짝인 그의 형제 야고보.. 특히 야고보는 가장 먼저 순교하는 제자입니다. 결국 높은산이어서 세명뿐이기도 합니다. 아니었으면 자신이 따라갈거라고 우기며 싸웠을 겁니다.

그런데 이 높은산이 우리가 말하는 변화산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납니다. 더 놀라운 것은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납니다. 그런데 대화의 주제는 다름아닌 예수님의 수난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대화의 주제, 기도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 따라간 제자들은 다 놓칩니다. 그 이유는 32절에 “깊이 졸다가”라고.. 그리고 이들은 온전히 깨어나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봅니다. 깊이 졸다가 잠깐 깨었을 때 놀라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서 잠이 완전히 깬 겁니다.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가 떠날때에 역시나 베드로가 예수님께 초막을 짓자고 합니다. 놀라운 은혜를 기념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요구였습니다. 그러나 33절 말씀에 분명히 합니다.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어제 말씀에 누가는 기록하지 않았지만 베드로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막아선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생각하면 베드로의 요구는 예수님의 마음을 힘들게 한 것입니다. 즉 변화산 사건은 앞으로 수난을 감당해야 하는 예수님께 힘을 주기 위함인데, 제자들은 오히려 힘들게 한 겁니다.

이때 하나님이 개입하십니다. 이 때 제자들은 오히려 무서워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위로를 받습니다.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특히 36절 마지막절은 명확하게 말씀합니다.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줍니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그리고 “제자들이 잠잠하여” 우리 신앙생활을 핵심입니다.

우리는 오직 주님만 보아야하고, 이를 위해서는 잠잠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을 놓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과 신앙을 돌아보면 졸다가 아니면 잠잠하지 않아서 얼마나 많이 놓쳤는지, 얼마나 많이 베드로처럼 했는지 깨닫게 됩니다. 그러기에 이시간 주님의 말씀을 놓치는 삶을 살지 않기를 주님의 말씀을 붙드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작성자
석광호
작성일
2021-01-28 14:51
조회
2373
전체 1

  • 2021-01-28 15:41

    베드로, 요한, 야고보
    모두 깊이 잠들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모세, 엘리야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는지 알 수 없었을 터인데...

    예수님께서 잠들었던 그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했었는지
    친절하게 알려 주셨던 것 같습니다.

    오늘은 꾸짖지 않으시고, 감싸 안으시며
    친절히 설명하시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늘 그러셨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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