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20221130 - "지혜도 헛되다"(전2:12~17)"

왕인 전도자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신의 뒤를 이어 왕이 되는 사람이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데 지혜자인 자신 보다 더 위대한 일을 행할 수 없고, 자신이 해 왔던 일을 똑 같이 반복할 뿐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12절에 내가 돌이켜 지혜와 망령됨과 어리석음을 보았나니 왕 뒤에 오는 자는 무슨 일을 행할까 이미 행한 지 오래 전의 일일 뿐이리라자신 이후에 어떤 왕이라도 자신이 행한 큰 일이나 자신이 해 왔던 그 이상의 활동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로도 이스라엘 역사상 문화, 경제, 군사, 학문의 모든 방면에서 솔로몬을 능가하는 왕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업적을 많이 이루었다고해도 죽음 앞에서는 다 소용없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지혜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판단하고 선택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지혜자가 우매자보다 훨씬 잘 살고 가치있는 인생을 사는 것처럼 보여져도 결국에는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죽음이라고하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깨달은 솔로몬은 내게 지혜가 있었다 한들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것도 헛되다(15절)고 합니다.

이렇게 한정된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이름이 오래도록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한 청년이랑 교제하는 남자친구랑 식사를 하러 갔는데 그 곳은 천정이 조금 낮은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음식을 시키고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천정에다 두 사람의 이름을 쓰더니 중간에 하트를 넣어서 쓰면서 박혜경전도사님과 왔다감. 이렇게 쓰는거예요. 그래서 저는 지워달라고했습니다. 그리고나서 두 사람이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청년과 저는 한번 더 그 식당을 방문했는데 그대로 글씨가 있었습니다. 제가 농담으로 “전남친 기억하기 좋다”라고 했더니 밥먹자고 하더라구요.^^

우리 모두는 기억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조금 더 길게 기억에 남을 수도 있지만 결국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립니다. 모든 것을 소유하고 업적을 쌓은 솔로몬에게 죽음이라는 한계는 더 헛되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깨달을 솔로몬은 17절에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미워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에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로다고 합니다. 내가 사는 것을 미워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땀 흘려 수고하고 업적을 쌓고, 지혜를 칭찬받고 하는 모든 것이 아무 유익이 없고 헛됨을 깨닫게 되면서 이렇게 헛된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수고하는 모든 것들이 헛된 인생의 허무함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그것은 죽음을 인식하고 살아야합니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에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누리고 있는 것,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야하는 존재임을 기억해야합니다. 이러한 죽음을 의식하고 살 때에 우리는 오늘이라는 하나님의 선물을 감사하며 의미있게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두 번째로, 우리를 영원토록 기억하시는 하나님을 인식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전에 손흥민선수의 아버지의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는데요. 손흥민선수의 아버지에게 춘천에 손흥민 거리를 조성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는 “은퇴하면 누가 이름이나 불러줄지 모르겠다”며 거절했던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잊혀질 것을 아는 것이지요. 사람들에게는 잊혀질지 모르나 하나님께 기억되는 오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혜도 헛되다"(전2:12~17)"

작성자
마중물
작성일
2022-11-30 08:42
조회
1148
전체 1

  • 2022-11-30 18:03

    죽음을 인생의 끝으로 보고, "Que sera, sera" 될대로 되라하며,
    어차피 죽을 인생 즐길 것 다 즐기고, 해볼 것 다 해보고 죽자라는
    수동적 허무주의...

    부, 명예, 권력이 절대 가치인 것처럼 포장 한 세대에,
    가짜 절대 가치를 차지하기 위해 지혜를 얻고자하는 사람들을 "오징어 게임"으로
    몰고가는 사회 흐름, 그리고 가짜 절대 가치에 반발하며,
    인간의 가치를 신의 영역으로 가지고 가려는 능동적 허무주의...

    수동적이든, 능동적이든 절대자를 인정하지 않고, 죽음을 생의 마지막으로
    보는 관점은 같습니다.

    허무주의와 전도서가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이런 관점에서 전도서의 지혜를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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