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서 | 이인호목사 칼럼

20201227 - "삶이 요동칠 때"

어릴 적에 마을 공동우물에서 물을 길어 나르시는 어머니를 따라다닌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나르셨는데, 지금도 기억나는 게 물이 가득 담긴 양철물동이에 어머니는 꼭 바가지를 엎어 놓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물이 출렁거려 넘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지요. 13세기 초에 성 프란체스코도 이와 비슷한 모습을 동네 아낙네에게서 본 적이 있다고 합니다. 물이 출렁거려 넘치지 않도록 물동이에 나뭇조각을 넣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요동칠 때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마음에 띄우면 되겠구나하고 생각했답니다. 실제로 그것은 효과가 있었습니다. 아무리 수양을 하고 예수님의 성품을 많이 닮았다고 하나 그도 사람입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사람의 마음은 시시각각으로 요동을 칩니다. 그때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묵상하면 어느덧 마음의 분요는 잠잠해지고 참된 평안이 찾아왔다는 고백입니다.

신학대학원 다니던 시절 집 근처의 야산에 저녁마다 올라가 기도했습니다. 하루는 기도를 끝내고 일어서는데 한 건장한 청년이 다가왔습니다. 캄캄하고 외진 곳이어서 조금 긴장을 했습니다. 청년은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청년은 그날 자기의 목숨을 끊으려고 산에 올랐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기도하는 소리가 들려서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열심히 다니지는 못했지만 한 때 교회에 나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밤이 깊어서 많은 대화를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저희 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한 번 찾아오라고 했습니다. 며칠 후에 청년은 찾아왔습니다. 신혼살림에 반찬이 변변찮았음에도 그는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30년이 넘은 일이라 구체적으로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다만, 예수님이 그 형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리고 형제의 생명이 얼마나 귀한지를 이야기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뒤 저는 이사를 갔고 형제와 연락이 끊겼습니다.

그 형제가 그날 죽으려고 산에 오른 것은 역설적으로 살고 싶은 그의 몸부림이었고 기도였습니다. 진짜 죽으려고 했었다면 산에서 누가 기도하든 난리를 피우든 무슨 상관이 있었겠습니까? 막연하게나마 그는 하나님을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족한 저를 그 형제를 위해 그 시간 그 자리에 두셨던 것입니다. 어쩌다 그 형제가 생각날 때면 그를 위해 조그마한 기도를 드립니다. 삶이 요동칠 때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그 마음에 떠올리기를 말입니다. 나아가 예수님의 생명 가운데 멋있는 삶을 살며, 어둠 속에서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예수님의 생명을 전달하는 빛의 통로가 되기를 말입니다.
작성자
이인호
작성일
2020-12-26 13:48
조회
1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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