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20200624 _ "복음"(고전15:1~11)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이 개발되었다면 매우 기쁜 소식이 될 것입니다. 실제로 감염이 된 사람이나 의료진들에게는 더 큰 기쁨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많은 것을 얻고 누린다해도 생명을 잃은다면 그 모든 것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뭐니뭐니 해도 생명을 얻는 것보다 더 기쁜 소식은 없습니다.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구원, 곧 영원한 생명을 얻는 유일한 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바울이 명쾌하게 정의해 놓았듯이, 복음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죄로 인하여 영원히 지옥형벌 받을 수밖에 없었던 나를 십자가의 피로 씻어주시고 영원한 부활생명을 선물로 주신 것과 비교할 수 있는 기쁨이 어디 있을까요?

바울은 이 비밀을 발견하고 그것 외에 자랑할 만한 모든 것을 비워버렸습니다. 오직 복음만을 전하고 자랑하였습니다. 복음의 빛 앞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자신이 얼마나 작은 자이며 모자란 자임을 발견해 갔습니다. 겸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도들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습니다. 이것은 자랑이 아니라 자기의 무력함을 인정하는 고백이며, 이것 역시 자기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임을 안 것입니다. 그는 진정 복음을 만남 사람입니다. 세상의 어떤 기쁨보다 복음을 깊이 만난 기쁨으로 살고 싶습니다.
작성자
이인호
작성일
2020-06-24 11:02
조회
2858
전체 1

  • 2020-06-24 13:00

    "Begin again" 제가 QT를 하면서 쓰는 방법입니다. 밀린 숙제하 듯, 밀린 것들을 되돌아 보지 말고, 오늘 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죠. 이번 주는 월요일 부터 분주했었는데, 지금에야 조금 시간을 가지고, 말씀을 대합니다.

    바울 선생님께서 사도로 인정 받기 힘드셨던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었을 것 같습니다.
    스테반 집사님의 사형 집행장에 있었고, 그도 모자라 기독교인들을 해체시키기 위해 다마스커스로 구속 영장을 들고 살기등등한 모습으로 가고 있었지요.

    사도는 예수님과 직접 만나 동행했던 제자들에게 붙여진 명칭이었다고, 누군가에게 배운 적이 있습니다. 바울 선생님은 빛과 소리로 나타나셨던 예수님을 만났을 뿐이었으니, 객관적으로 사도라 불리기에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자격 논란도 있었다고 하네요.
    그럼에도 바울 선생님은 사도 칭호를 받게 되셨지요.

    만약, 바울 선생님께서 사도 칭호를 받지 못하셨다면, 예수님의 육신과 함께 지내지 못했던 우리에게도 "제자의 삶"을 살 수 있는 희망이 있었을까요?

    "빛과 소리" 이후 성령님의 이끄심을 받으셨던, 바울 선생님이 있었기에, 예수님의 육신과 함께 있었던 분들만 사도로 불리우지 않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예수님을 만나게된 우리도 사도와 같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과 불연듯 들어 감사하게 됩니다.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과 직접 삶을 보내지 않았고, 오히려 그 제자들을 박해했던 바울 선생님이 자신의 삶으로 예수님 성령님과 함께 지냈다는 것을 증명해 내셨고, 사도로 칭함을 받으셨다는 것이 오늘 저에게도 사도의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시네요.

    물론 바울 선생님의 발끝조차 따라가지 못할 삶이지만, 오늘도 또 한 걸음 한번 내 디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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