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20210222 - "아홉은 어디에?"(눅17:11~19)

1년 전까지만 해도 당연히 여겨져 왔던 것들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인가를 새삼스럽게 느끼고 있습니다. 잃어봐야 그 귀중함을 안다는 말이 지금처럼 실감나는 때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마리아와 갈릴리의 경계에 열 명의 나병환자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의 무리가 보이자 그들은 바로 알아차리고 예수님을 향하여 소리를 높여 자기들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사장들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병이 고쳐질 것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그들의 병이 나은 게 아닙니다. 나병이 있는 채로 일반백성이 사는 마을에 들어갔다가는 돌에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제사장을 만나러갔습니다. 가는 도중에 그들은 깨끗함을 얻었습니다. 믿음으로 발을 앞으로 디디자 하나님의 역사는 그들의 눈앞에서 현실이 되었습니다.

영화의 장면처럼 홍해는 한 순간에 "쫙-" 갈라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믿음으로 앞을 향해 한 발짝씩 나아갈 때 밤새도록 갈라졌습니다. 요단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미리 강이 갈라진 게 아닙니다. 법궤를 멘 제사장들이 믿음으로 철철 넘치는 강물을 밟자 갈라졌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무궁무진하게 내게 주어졌습니다. 눈에 아직은 아무 증거 보이지 않는다 해도 믿음으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야하겠습니다. 홍해를 헤치시고 요단강을 가르셨을 때와 동일하신 주님이 일하실 것입니다.

열 명이 다 고침을 받았는데, 그 중에 한 명만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를 드렸습니다. 사마리아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들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고침 받은 사람들 중에는 유대인들도 있었을 텐데 신앙이 좋다는 그들 중 하나도 감사를 표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홉은 어디 있느냐?"

그만큼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는 자가 적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말하고 움직이고 호흡할 수 있음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가족과 교회 공동체의 존재가 얼마나 큰 복인지 깨달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감사를 드리는 하루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작성자
이인호
작성일
2021-02-22 09:40
조회
2314
전체 1

  • 2021-02-22 12:17

    나병 환자들이 예수님께 찾아 나온 목적은
    그저 병이 낫기를 원함이었습니다.
    병이 나았고, 그 목적이 이루어 졌으니
    더 이상 예수님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죠.

    그래서, 남은 자의
    Portion은 단지 10%에 불과 했습니다.
    나머지 10%도 예수님의 제자로 남았는지는
    성경에 기록이 되질 않았습니다.

    오늘은 제가 왜 예수님을 믿는지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닮은 제자의 삶을 살기 위해
    예배도 드리고, QT도 하고, 예수님을 따르는데
    그 분을 닮기가 이리도 힘든지요?

    신이면서 완전한 인간이셨던 예수님.
    신의 영역은 내가 따라 할 수 없지만, 인간의 영역은
    따라 할 수도 있으련만...

    인간의 영역 역시 죄가 없으신 분과 같이 되라는
    명령이 Unfair 하게 느껴집니다.

    성령님이 함께 하시면, 이 불가능한 Mission이
    가능해 진다는 약속의 말씀이 있으니
    구하라, 두드리라, 찾으라 라는 말씀대로
    한번 따라해 보렵니다.

    // 나의 꿈을 이루려 하지 않고, 예수님의 꿈을 함께 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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