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서 | 이인호목사 칼럼

20210704 - "중도(中道)"

“적당히 해라”는 우리말은 부정적인 어감을 줍니다. “대충해라”, “요령피우면서 해라”는 뜻으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아주 좋은 말입니다. 너무 지나치지도 너무 모자라지도 않고 적정한 선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적당히 하면 탈이 없습니다. 그리고 최상의 결과를 만들 수 있습니다. 소금으로 국이나 음식의 간을 맞출 때 적당량을 써야 맛있습니다. 너무 많은 소금을 넣으면 짜서 먹기가 괴롭습니다. 너무 적게 넣으면 심심해서 맛이 나지 않습니다.

물론 어떤 경우의 일에 있어서 모든 역량을 극대화해야할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 적당히 해서는 죽도 밥도 되지 않습니다. 최선을 다해 온 몸을 불살라야 쓸 만한 결과가 나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모든 일에 있어서 적당히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을뿐더러 권장할 만한 것도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욕구와 바람에 있어서 적당한 선을 지키는 것이 지혜라는 것입니다. 욕구가 지나치면 욕심이 되고, 그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욕심이 있을 때 허황된 것을 바라며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얻은 부와 명예는 결국 욕된 것으로 변합니다. 비록 좁고 험하다하여도 정도(正道)를 가야합니다. 너무 많이 갖고 누리려는 것은 욕심입니다. 정직하게 사는 것이 손해고 불이익을 당하는 삶이라할지라도 그 길에 참된 기쁨이 있고 참된 생명이 있습니다. 정도를 가고자하는 사람은 그 길이 과욕을 비우는 중도(中道)임을 압니다.

135여 년 전 교회가 시작되어 약 100년 동안 한국교회는 가난했습니다. 겸손히 하나님을 찾으면서 세상에 들어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교회 다닌다하면, 정직한 사람이란 인식이 있었습니다. 1970년 중반에서 1980년대를 지나면서 한국교회는 급속도로 팽창을 했습니다. 그리고 부자가 되었습니다. 등 따스하고 배부르게 된 것입니다. 점점 교회는 세속화되어가고 불미스러운 모습을 보이게 된 것입니다. 100여 년 전 국민의 3%도 안 되었던 한국초대교회 성도들은 이 민족을 절망으로부터 깨웠고 이 땅을 새롭게 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한국기독교는 그 숱하고 모진 박해 속에서도 신앙의 지조를 지켰고 민족 해방에 앞장을 섰습니다. 6.25동란 후 폐허 속에 제일 적극적으로 앞장서서 발 벗고 나선 이들이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교회가 부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비록 많이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중도를 벗어나지 않고 정도를 감으로 이 민족의 소망이 되었습니다.
작성자
이인호
작성일
2021-07-01 18:53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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